2008/8/28 중국노래베스트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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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开天窗
2)风云决
3)彩虹
4)爱情转移
5)如果能在一起
6)传说
7)别说
8)满满的都是爱
9)离开悲伤

by 케이의꿈 | 2008/08/28 14:18 | 중국노래벨소리 | 트랙백

전혀 미래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by 케이의꿈 | 2008/02/12 03:08 | 유머 | 트랙백

중국판 선풍기 아줌마와 그의 가족이야기2부

▨신혼혼수:탁자와 책상

다음날 새벽4시정도에 정월복씨부부는 신혼집이있는 마을까지 도착을 하였다. 바로 여기서 우연히 운전을하는 마을사람을 만났는데 그마을사람이 하루를 꼬박 걸어서 왔다는 말을 듣고 매우 깜짝놀랐다고 한다. 그말을 듣고 전혀 꺼리낌없이 자신의 차에 태운후 그들을 신혼집근처까지 데려다 주었다. 하지만 내린곳부터 신혼집까지는 3킬로 정도를 또 걸어야만했다. 조그만 버스길을 따라 또다시 걷기 시작을 하였다. 아침해가 솟아오를쯤 겨우 집문에 도착할수 있었으며 정월복씨의 부모님의 최고의 대우로 새며느리를 맞아 주았다.
손수영씨는 남편이될사람의 집안분위기가 매우 맘에 들었고 2일밤을 더보내었다. 정월복씨는 다시 신부가 돌아갈때 차를 한대 대절하여 신부가 집까지 편하게 갈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었다.
신부가 돌아가기전에 결혼날짜를 이미잡에 신부가 돌아간후 결혼등기소에서 혼인사실을 등록하였고 한편으로는 신혼집을 수리하고 한편으로는 신혼집에 쓸 가구를 구입하였는데 탁자하나와 책상하나 이것이 그들부부의 신혼혼수의 전부였다.


▶이들부부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후 한 유명연예인이 손수영씨의 생일을 축하하여 주는모습

▨부부의사랑이야기가 주위사람들에 입에서 마르지 않다.

결혼식을 한그날 정월복씨는 일찍 옷을 갈아입고 마을에서 유일한 DONG FENG회사의 트럭을 타고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를 직접 데려왔다. 결혼식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하였고 비록 신부의 얼굴은 장애가 있지만 정월복씨의 인간성은 마을사람들 모두가 알고있는만큼 정월복씨의 선택을 모두가 축하해 주었다.
정월복씨의 기억으로는 자신이 결혼식이 마을에서 한결혼식중 제일 사람들이 모두 많이 참석하였다고 한다.
결혼후의 회식자리와 먹을거리도 모두 마을 사람들이 후원하여 주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정월복씨의 저웃음이 너무 부럽습니다.행복한미소...


▨정월복씨에게 시집을 간것은 전생에서 쌓은 복때문인것 같다.

당시에 여동생을 제외하고는 정월복씨의 3명의 남동생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였는데 부친의 나이는 이미팔순이셨고 모친의 건강도 매우 악화되어 있었다.집안일은 이제 막 시집온 손수영씨에게 넘어 갔는데 주방일과 돼지와 닭사육하기등등...손수영씨는 하나하나씩 익혀 나갔다.

그들부부의 신혼생활은 매우 달콤했다. 정월복씨는 무슨일을 해도 하나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저녁에 들어와서 신부의 발을 미지근한물에 직접 닦아 주었다.하지만 신부의 얼굴혹이 점점더커지자 얼굴을 닦고 머리를 감고 빗고 하는일이 신부혼자사 하기가 힘들어지자 정월복씨는 불평한마디 하지않고 그일을 모두 해주었다고 한다.손수영씨도 다른사람을 만나면 하는말이 "남편에게 시집온것이 아마도 전생에 쌓은 복때문이 아닌가 합니다"라고 한다.


▶이들부부의 딸 공부도 잘하고 집안살림도 도와주기까지 한다
▨임신을 하다.

달콤한 날들은 하루하루 지나가고 있는데 중요한것은 손수영씨의 임신소식이 들리지 않아 정월복씨의 부모님들은 매우 조급해했었다고 한다. 계속 손자를 기다리시다가 정월복씨의 부친은 그만 86년5월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이때를 기하여 모친의 건강도 더욱 악화되셨다고 한다.
91년 어느날 갑자기 손수영가 자신의 배애서 느낌이 오는것을 느꼈다고 한다.임신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신이었다.그날밤 손수영씨는 맛있는 요리와 술까지 사와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정월복씨가 일이끝나고 집에돌아왔는데 무슨날도 아닌데 아내가 음식을 준비한것이 의아해 물어보니 아내가 말하기를 오늘은 좋은날입니다. 무슨 좋은날이냐고 물어보자 바로 정월복씨는 아내의 임신이라고 직감을 하였고 서로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를 잘키우겠다고 명심또 명심하였다.

▶비록 집안은 가난하고 솥에는 비록 녹투성이이지만 정월복씨와 그의 가족은 행복하기만 해보인다

▨아이의 탄생! 온가족이 행복에 물들다.

1992년 2월 그렇게 그리고 그리던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너무건강하였다. 정월복씨의 어머님도 너무좋아하셨으나
그만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후 바로 실명을 하셨으나 이젠 실명해도 더이상 여한이 없다.이미 그토록 원하는것을 보았는데 실명한것이 뭐 어떠하리.....


-끝-

어떻습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것은 바록 가족 같습니다.가족의 따뜻함은 어떠한것과도 바꿀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는것같습니다.제자신도요. 언젠가는 헤어질 가족들 그때 후회하지맙시다!!^^)

▶참고:Yahoo News (China)
▶가져가실시 출처를 남겨주세요.
Force By Kay



 

by 케이의꿈 | 2007/01/02 15:15 | 중국에는 이런일이? | 트랙백

중국판 선풍기 아줌마와 그의 가족 이야기-1부



  

▶참고:Yahoo News (China)
▶가져가실시 출처를 남겨주세요.
Force By Kay


중국에서 아주 멋있는 가장과 그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안면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내를 보살피고 있는 한가장의 이야기입니다. 한때 이부부가 언론에 알려지자 많은 도움의 손길이 왔다고 합니다. 이삭막한 현실,안면장애가 있는 부인을 맞이하여 아름답게 가정을 꾸리고 있는 한가장의 이야기를 올릴라고 합니다. 기사의 원본이 수기형식으로 되어었어 최대한 원래 기사의 표현으로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중국판 선풍기 아줌마와 그의 가족의 이야기-1

 

바로 제앞에 계시는 정월복아저씨는 키가 매우 작으시다 1.5m정도 되시는것같다. 나이가 지긋히 들어보이시는 인상에 제일 눈의 띄는 부분은 할어버지의 짖은 눈썹이다. 백현에 농사를 천직으로 태어나신 농민이신 정월복 아저씨는 올해 52살이시다

 

정월복아저씨와 그의 부인 그리고 이부부의 딸.

 

마을에 행사가 있을때 항상 앞장서다.

 

정월복씨는 젊으실 때 8년동안 중국공산당의 지부의 서기였다.(지역의 책임자를 가르킴).촌에서 각종활동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시고큰행사가 있으시면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여러가지 부분에서도 아주 아시는것이 많다.특히 칠판에 글자를 잘쓰씨는데 속도가 아주 빠르시다.올해에는 현에서 표창까지 받으실 정도로 마을일에 적극적이시다. 정월복씨는 매우 품성이좋으신 분이어서 촌안에서 누구네집에서 크고 작은 행사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신다 마치 마을에 큰일을 처리하시는 해결사 같은 분이시다.

 

청년돌격대시절 추운 겨울에 제방시설을 고치다.

 

1976년 봄 촌안에 제방시설을 수리하려 사람들을 모집하였는데 정월복씨가 청년돌격대의 리더을 하고 있었다.4월에 강가의 얼음이 갓 녹기시작했을때 강가의 물은 아직도 살을 에이듯 추웠다.아무런 장비,보호구도 없이 그물에 들어갈 지원자는 없었는데 제방을 수리하는 일은 지체할수가없어 정월복씨와 그인원들은 그차가운물로 들어가 물속에서 밖으로 돌을끌어 올렸다. 당시24세였던 정월복씨는 그일로 인해 류마티즘이 걸리게 된다.병으로 인해 자신의농사를 짖지 못하였고 단지 낮은 임대료를 받고 다른사람이 농사를 짖게 한다.

 

서유기 삼국지등 이야기로 동네아이들의 귀를 즐겁게 하다.

 

정월복씨는 촌안에서 이야기왕이였다.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는 그는 아니였지만 모든이야기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들은것이였다. 70년대장백현의 농촌에서는 티브이가 없었고 영화도 볼기회가 매우 적었다.저녁 아이들의 최고 오락거리는 정월복씨의 집앞에 있는 큰 버드나무아래서 정월복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서유기,삼국유사등등. 또 정월복씨는 말재주가 있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야기에 빠져들도록 하였다.

나중에는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이웃의 아가씨들 아주머니들도 모두 버드나무아래로 모여 가족들의신발의 밑창을 수선하며 이야기에 빠져들고 하였다.

 

31세의 노총각 결혼성공

 

정월복씨는 형제중에서 맏이다 3명의 동생과 1명의 여동생이 있는데 1952 10월에 정월복씨가 태어났을시 그의 부모님은 49세의 중년이었다 형제가 많고 또 부모님의 연세가 많고,어머님은 다리가 불편하신 장애인이어서 집안의 생활은 계속 넉넉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상형:부모님에게 효도하는 아가씨

 

70년대 자신의 동년배들은 모두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을시 자신에게 시집을 올려는 아가씨는 없었다고 한다.정월복씨는 마음이 조급해졌고 그부모님은 더조급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월복씨는 아무일없는듯 즐거운 마음으로 공산당지부에서 서기를 하고 있었다. 눈깜짝할사이 80년대가 되었고 정월복씨는 이미30세가 훌쩍넘어 버렸다. 마음이착하고 됨됨이가 모든일에 성실한 이유로 동네사람들이 그의 결혼심을 기대하고 있었다.

일부중매쟁이들도 정월복씨한데 어떤아가씨를 찾냐고 물었을때 정월복씨는 명쾌하고 즐겁게 단지 부모님에게 잘해주는 아가씨면 좋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타지에서 온 민속가무팀과의 인연

 

1983년 봄 마을안에 민속가무팀이 만들어 졌고 정월복씨도 당연히활동에 참가하였다.타지에서오신 임부인도 민속가무팀의 일원이었는데 정월복씨를 보고 인품이 훌륭하고 이상형의 기준이 높지않아 바로 자신의 어머니의 이웃인 장애인아가씨인 손수영씨를 소개해주기 마음먹었다. 그날 민속춤을 출준비를 하고 있는 정월복씨에게 중매를 서준다는 말을 하였다.정월복씨는 고맙다고 말을 하고 그런분들이 많이 있었는지라 별로 마음에 두지않았다.그러나 바로다음날 임부인은 다시 정월복씨에게 손수영씨에게 관한 말을 다시꺼냈는데 아가씨의 인물이 별로라고 말을하였다,하지만정월복씨는 얼굴은상관없다며 자신의 아이를 낳아줄여인이면 좋다고 대답을 하였다.다시 임부인은 아가씨의 눈이 하나는 위쪽에 하나는 아래있다고 말을했더니 정월복씨는 그녀의 한쪽눈은 하늘을 관()하고 한쪽눈은 땅을관할것이라고 대답했고 이후에 불상사도 그녀의 두눈이 해결을 해줄것이라고 했다.

 

민속가무공연이 끝나고 음력226일에 임부인은 정월복씨를 데리고 손수영씨가 있는곳으로 데리고 갔다.반나절을 덜컹거리며 비포장도로를달리야 도착할수 있는곳이었다.정월복씨는 실제로 손수영씨를 보았을때 비록 마음의 준비를 했었지만 실제로 보았을때 솔직히 많이 놀랐다고 한다.그러나 재빨리 안정을 취하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마에 큰 혹이 생긴 17세의 아가씨

 

손수영씨는 1966년 3월8생이다. 정월복씨를 만난시기가 17세였다. 그녀가 출생시 좌측이마에 큰혹이 바로 자라기 시작했다. 후에 의사선생님에게 검진을 받았는데 혹의 정체는 바로 혈종기였다. 위치도 민감한부분이라 수술도 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손수영씨의 혈종기는 하루하루 무섭게 자랐다.학교에 입학할나이가 되자 손수영씨의 부모님은 마음이 점점 급해지기 시작했고 매번 손수영씨를 밖에 데리고 나갈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수영씨를 보고 겁을 내곤 했다. 이상하게 보는 시선들....손수영씨에게 너무 힘드나날이었다. 어떤아이들은 손수영씨를 보고 바로 울음을 터트리곤했다. 결국 손수영씨는 입학을 하지 못하였다. 이유는 손수영씨의 얼굴을 보고 아이들이 겁을 낼것이라는 학교측의 입장때문이었다고 한다. 어린 손수영씨는 자신의 형제들은 학교를 가는것을 보고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었다고 한다. 손수영씨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나가질못하고 사람들도 손수영씨를 보지 못하고 본인도 다른사람들을 보기꺼려하니 다른사람들에 의해 이상한사람을 취급을 당하기 싫어 손수영씨는 집안에서만의 은페생활을 계속 하게 된다.

 

 

모두 불행이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손수영씨의 이야기를 들은후 정월복씨는 마음에 가련한마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모두 불행이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내가 누구를 고르겠는가? 정월복씨는 명쾌하게 이 결혼식을 승낙을 하였다.손수영씨를 아내로 받아들이기로 한것이다. 손수영씨의 집에서는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정월복씨는 부모님과 오빠와 함께 음식을 먹고 술도 얼큰하게 드셨다고 한다.

손수영씨의 집에서 보낸 2일째 되는날 손수영씨의 부모님은 정월복씨의 인상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느끼기에 그리 유복한집안도 아니고 매우 작은키를 가졌지만 임품이좋고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중요한건 모든 것이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고 유머스러운 말투가 매우 맘에 들었다고 한다. 음력228일 마침내 정월복씨는 손수영씨를 데리고 고향으로 출발한다.

 

고향까지갈 차를 구하지 못해 70km을 밤낮으로 걷다.

 

그날 아침 손수영씨의 부모님은 고속버스터미널에 마중을 나와서 버스표까지 친히 사주었다. 정월복씨와 손수영씨가 버스에타자 이미 버스에 있던 승객들은 손수영씨를 보고 모두 겁에 질려 내리기 시작했다.버스터미널측은 할 수 없어 버스티켓을 환불해주었고 다른 교통편을 이용할려고 해도 모두 같은 결과 였다.정월복씨는 손수영씨의 가족들과 이별을고하고 버스길을 따르 걷기 시작했는데 혈종기가 머리신경을 계속하여 눌러서 오랬동안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그래서 70km이 좀안돼는 길을 하루종일 밤낮으로 걸었다고 한다.오는길에 10대정도의 차에게 차를 얻어탈라고 했으나 수영씨의 외모를 보고 모두 거절하였다. 어떤차는 어두운 밤에 걸어가는 그들을 보고 불쌍히여겨 차에 태울려고 했으나 수영씨의 외모를 보고 모두 혼비백산 도망갔다. 그날따라 뼈까지 스미는 듯한 추위와 눈까지내려 서로를 의지하며 앞으로 앞으로 한발자국씩 걸어 나갔다.


 

by 케이의꿈 | 2006/12/12 18:06 | 중국에는 이런일이? | 트랙백

홍콩-몰카촬영자 최고 7년형

▶도대체 몰카라는 개념이 어디서 부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홍콩에서도 몰카촬영자에 대한 구체적인 처벌이 나왔습니다.




▶여성탈의실 옷걸이에 카메라를 장착한 예


신화사와 홍콩미디어보도의 내용을 보면 핸드폰의 카메라기능이나 전자제품의 카메라기능으로  점점많아지는 몰카촬영자들에 대하여 홍콩경찰은 홍콩특별구역정부의 사법부의 지시에 따라 일반법의 공공체파괴법의 일종으로 몰카촬영자들을 처벌하기로 하였다 기존에는 단순범죄의 가벼운 처벌이었으나 범인은 죄가 확정되면 최고7년형으로 강력처벌하기로 하였다.

홍콩특별구의 경찰처의 말을 따르자면 최근 많아지고 있는 핸드폰의 카메라기능과 기타기계의 발전으로 홍콩경찰은 홍콩특별구의 사법부에게 이후 경찰들이 업무에 참고하도록 조언을 얻었다.

사법부의 최신법률을 따라 경찰은 다양한 범죄조건,현장에서 현장에 맞는 형사처벌을 할수있다.

2년전 홍콩에서 핸드폰을 이용하여 여성의 속옷을 촬영하는 사건이 벌어진후 계속하여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몰카금지법에 없었을때에는 경찰들은 단순범죄로 범인을 처벌할수 없었서 범죄율이 높았으나 법이 정해진 지금 몰카자들이 많이 줄어들것으로 보인다.

▶참고:Yahoo News (China)
▶가져가실시 출처를 남겨주세요.
Force By Kay

 

by 케이의꿈 | 2006/12/06 13:11 | 중국신문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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